그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어쩌면 그 사람은 어떤 하루를 반복하고 있는가 일지도 모른다. 하루하루 반복되는 루틴은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 우리의 삶 전체를 구성하고 있다. 나라는 사람을 이루는 요소가 거창한 목표나 드라마틱한 사건이 아니라, 매일 아침 어떻게 눈을 뜨고, 어떤 말투로 사람을 대하고, 어떤 식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을 점점 실감하고 있다.
나도 예전에는 루틴이라는 단어에 별 감흥이 없었다. 매일 똑같은 패턴이라는 말이 지루하게 느껴졌고, 즉흥적이고 자유로운 삶이 더 멋지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마음이 자꾸 불안하고, 하루의 끝이 늘 허무하게 느껴지던 어느 시점부터, 나는 의식적으로 루틴을 만들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한 변화는 그때부터 시작됐다. 이 글에서는 내가 경험한 루틴의 힘과, 그것이 삶의 방향을 어떻게 이끌어 가는지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1.무의식적인 반복이 나를 낡게 만든다
많은 사람들은 반복적인 일상에 지루함을 느끼지만, 정작 그 반복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잘 인식하지 못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특별히 나쁜 습관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남들과 비슷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돌아보면 내 하루는 상당히 무의식적인 반복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스마트폰을 뒤적이고, 점심은 대충 때우고, 일 끝나면 소파에 누워 유튜브를 틀고 잠들기 전까지 무기력하게 시간을 흘려보냈다.
이러한 패턴이 쌓이자 나는 점점 내 삶에 주인이 없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하루가 끝나고, 피곤한데도 만족스럽지 않은 날들이 이어졌다.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무언가 잘못 살고 있다기보다, 아무 생각 없이 반복하고 있는 생활 패턴이 나를 점점 낡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결국 우리가 반복하는 것이다. 무의식적인 루틴은 나를 자동 반응의 인간으로 만들고, 의식적인 루틴은 나를 목적 있는 존재로 이끈다. 그 차이가 매일 1%라도 반복된다면, 1년 후, 5년 후, 전혀 다른 삶에 도달하게 된다.
2.작고 의식적인 루틴이 삶을 바꾸기 시작했다
어느 날, 나는 무언가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절박함에 아침 루틴부터 손보기 시작했다. 너무 거창한 계획은 오래가지 못할 걸 알기에, 단 한 가지 목표만 세웠다. 기상 후 30분 동안 스마트폰을 보지 않는다. 아주 단순한 약속이었다.
처음 며칠은 그 짧은 30분이 이렇게나 길게 느껴질 줄 몰랐다. 하지만 그 시간을 걷기나 스트레칭, 노트에 생각을 적는 것으로 채우기 시작하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하루를 정보에 잠식당하지 않고 시작하는 감각이 생긴 것이다. 내 생각, 내 기분, 내 몸의 상태를 먼저 점검하고 나서야 외부의 자극을 받아들이니 하루 전체가 훨씬 안정적으로 흘렀다.
그다음에는 자기 전 1시간 루틴을 만들었다. 스마트폰 대신 책 한 챕터를 읽거나 명상 앱을 틀고 조용히 눈을 감는 시간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습관 들이기가 어려웠지만, 일주일, 한 달이 지나자 이 루틴이야말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가장 좋은 선물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처럼 아주 작은 루틴 하나만 바꿨을 뿐인데, 내 삶에 기준이 생겼다. 루틴이 생기면 하루가 통제 가능해진다. 감정이 덜 흔들리고, 나를 더 신뢰할 수 있게 된다. 무엇보다도 나는 내 삶을 설계하고 있다는 감각이 자존감을 서서히 회복시켰다.
3.루틴은 삶을 자동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삶을 복원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루틴을 지루하거나 통제적인 것으로 여긴다. 하지만 오히려 그 반대다. 루틴은 나를 구속하는 것이 아니라, 무너져버린 주체성을 회복하는 방법이다. 일정한 틀 안에서 나만의 감각을 세우고, 삶을 기계적 반복이 아닌 의식 있는 실천으로 바꾸는 도구가 된다.
루틴은 내가 누구인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운동을 루틴화하는 사람은 자신의 건강을 중요한 가치로 삼고 있다는 걸 의미하고, 저녁 시간 책을 읽는 사람은 성장을 삶의 일부로 여기는 것이다. 루틴은 나의 철학이자 삶의 방향을 보여주는 간접적 언어다.
물론 삶은 언제나 예외와 변수로 가득하다. 모든 날이 계획대로 흘러가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 날에도 돌아갈 수 있는 기본값이 있다는 것이다. 루틴은 복잡한 삶 속에서 중심을 잡아주는 앵커다. 마음이 흔들리고 감정이 과하게 출렁일 때, 나를 다시 제자리로 데려오는 힘.
작고 단단한 루틴이 하나씩 쌓이면, 삶은 어느새 안정된 흐름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그 흐름 속에서 우리는 자신에게 더 정직하고, 삶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된다. 내가 만든 루틴이 결국 나를 만들고 있다. 오늘 하루의 반복이, 나라는 사람을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빚어내고 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반복하고 있는 행동들이, 내가 바라는 사람이 되는 데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볼 시간이다.